#프롤로그-19.04.22
인간은 민족, 부족 등 특정 그룹에 따라 똑같은 하나의 대상을 두고 다르게 부른다. 예를 들자면 하나의 동물이나 강, 산, 바다를 두고도 다르게 이름을 붙이며, 똑같은 행위마저 다르게 발음하고 표기한다. 옛부터 각기 다른 부족들은 서로 다른 혹은 비슷한 언어 체계를 형성하였고, 비슷한 단어를 공유하거나 혹은 완전히 다른 단어를 창조해냈다. 하지만 이래나 저래나 그 대상의 실체는 오직 하나이며, 언어 따위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인 것이다.
인간은 하나의 대상을 언어적으로 다르게 부르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인간은 그 대상의 형태를 왜곡, 과장시키거나 완전히 탈바꿈시키기도 한다. 특히 신화나 전설 등 문학적으로 표현된 대상들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거나 종이에 기록되면서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각 민족들의 머리속에 각인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변모가 심화되어 똑같은 하나의 대상이 여러개의 독립적인 존재들로 나뉘어 사람들의 숨과 잉크 속에 담기는 것이다.
얼마나 황당한가? 나는 가끔 내가 그 대상이 되었다고 상상해 본다. '나'라는 존재는 옛부터 혹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본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데, 세계 각 민족마다 나를 다르게 묘사하는 것이다. 만약 나였다면 모든 민족들 앞에서ㅡ그러려면 유명 TV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인터뷰를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겠다ㅡ나의 모습을 온전히 공개하여 그들의 케케묵은 오해들을 풀어주고 싶은 '충동'이 들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여지껏 그러한 사례를 듣거나 보지 못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는데, 하나는 그 자신이 밝히고 싶지 않은 것이고, 또 하나는 그 대상이 실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적어도 요즈음 사람들은 후자의 의견을 대체로 따를 것인데, 나 역시 후자의 의견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가 다 무슨 소용인가. 그럤다면 나도 내 소중한 시간을 창밖으로 털어 날리면서까지 이야기를 꺼낼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접할 때면 독자나 청자들도 내심 구연자나 작가가 말도 안 되는ㅡ비현실적인 혹은 비과학적인 내지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꺼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들이 나에게서 무엇을 기대하든 나는 내가 겪은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풀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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