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8년 원 제국(Их Юан улс)이 붕괴되고 정치적 분열로 인해 몽골이 오이라트(Ойрад)-서몽골(Баруун Монгол)과 황금 가문(Алтан ураг)의 고향 땅 동몽골(Зүүн Монгол)로 분열되었다. 동몽골의 열두 지역(отог) 중 다시 다섯 지역이 독립하여 남몽골(내몽골-Өвөрмонгол)을 형성하고 남은 일곱 지역은 할흐 몽골(Халх Монгол)을 형성한다. 그들은 일시적인 통합과 분열이 거듭하는 혼란의 시기를 겪다가 1636년 내몽골이 만주 청나라에 정복되었고, 1691년 할흐 몽골, 1755년 중가르-오리라트(Зүүн гарын хаант улс)가 차례로 정복되었다. 1755년부터 1758년까지 아마르사나(Амарсанаа)와 칭궁자웁(Чингүнжав)장군을 중심으로 무장 봉기가 일어났으나 무자비하게 진압되어 주권을 잃은 몽골은 오랫동안 만주 청나라의 지배시기를 겪게 된다. 1911년이 지나서야 제정러시아의 원조를 통해 몽골인들이 독립을 선언했고, 1921년 중화민국이 외몽골의 자치권을 박탈하였으나, 소비에트 정부의 원조를 받은 수흐바타르(Сүхбаатар)의 인민 의용군과 적군 연합군이 몽골을 중화민국과 백군으로부터 해방시킴으로써 1921년 완전히 해방하게 되었다. 하지만 외몽골과 함께 완전한 통합, 독립을 이루지 못한 내몽골은 지금까지도 중국의 자치구로 남게 되어 외몽골과 분단되어온 것이다.
우리가 앉은 좌석은 가장 저렴한 일반석이었다. 한 칸에 8명이 앉는데, 그 중 2좌석은 한 편으로 분리되어있고, 나머지에 6명이 앉게 된다. 좌석 위로는 2층 침대가 있고, 꼭대기에는 보통 짐을 두지만 몇몇 사람들은 그곳에 누워 잠을 청하기도 한다. 일반석에는 베개와 이불이 제공되지 않지만 30시간 이상 푸르공에서 덜컹거렸던 차강노르 여정을 생각하면 누워서 갈 수 있는 것 만으로도 감사했다.
우리와 같은 칸에 앉은 오육십대 아주머니들은 몹시 에너지가 넘쳤다. 마치 명절날 우리 이모들을 보는 듯 했는데, 그 정도의 흥을 가진 아주머니를 몽골에서 보는 일이 그리 흔하지는 않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한국에 대한 이야기가 절반이었다. 알고 보니 그 아주머니는 20년 전 한국 인천에서 일을 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들과 이야기를 하며 친해졌는데, 마침 그들과 목적지가 같아 그곳까지 함께 가기로 되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에렌 허트이다. 우리는 자밍우드에서 내린 뒤, 국경을 넘어 에렌 허트로 가는 탈 것을 구해야 한다. 보통 그 비용이 한 사람당 50위안에서 100위안까지도 받기 때문에 우리는 40에서 50위안까지 흥정을 하는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이 아주머니들이 20위안이면 갈 수 있다며 자기들과 함께 가자는 것이었다. 이 두 아주머니는 에렌 허트를 수시로 오가며 한국 화장품들을 파는 상인이었다. 그들은 한 사람당 20위안이면 갈 수 있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 8시 즈음 자밍우드에 도착하자 역 광장에 모인 운전자들이 에렌허트에 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호객 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그 아주머니가 20위안에 간다고 하자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혀를 차며 거절해 버렸다. 아주머니는 어차피 국경이 9시 30분 이후로 열리기 때문에 시간은 많다며 20위안을 고집했다. 15분쯤 지났을까 남은 운전자들 중 한 명이 접근해서는 에렌으로 갈 것이냐고 물어봤다. 아주머니는 퉁명스럽게 20위안으로 가겠다고 했는데, 운전자가 선뜻 응했다.
우리 넷은 바로 운전자의 차에 짐을 실었다. 5분 즈음 달리자 국경 심사대 뒤로 100대 가량의 지프차가 줄을 서있었다. 운전자와 아주머니들이 바로 내리길래 따라 내렸다. 여기서부터는 지프차를 타고 가게 되었다. 그 운전자 소유의 러시아산 지프차에 탔는데, 상태가 거의 구 소련 시절의 지프차 같았다. 앞 유리창은 누가 돌은 던진 듯 거미줄처럼 금이 가 있었고, 운전석 문이 닫히지 않고 열린 채 대롱대롱 걸려 있었으며, 시동은 곧장 3단까지 올려야 차가 굴러갔다. 마치 전쟁 중에 쓰이고 있는 지프차와도 같았는데, 흥이 많은 아주머니도 조수석에서 “돌격! 돌격, 중국으로!”를 연신 외쳐댔다.
동 고비에서 태어나고 자란 운전사는 아무리 봐도 누군가를 닮았다는 인상을 주었는데, 바로 한국의 배우 안성기였다. 내가 그에게 한국의 유명한 배우를 닮았다고 하자 웃음을 지으며 누구와 닮았느냐고 물어봐서 핸드폰으로 안성기 배우를 검색하여 보여줬더니 모두들 정말 닮았다며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그렇게 정신 없이 이야기를 하다가 40분 즈음 지났을까 드디어 앞차들이 모두 통과하고 우리도 심사를 받게 되었다.
국경을 통과하고 두 아주머니는 시장에서 내리시며 운전사에게 우리 둘을 에렌 역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하셨다. 그 덕에 우리는 1시 10분 발 후흐 허트 행 기차가 떠나기 전에 표를 살 수 있었는데, 좌석이 모두 나가 입석을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6시간 동안 서서 가야 하겠지만 다른 방법이 없어 입석을 구입하고 서둘리 점심을 먹으러 근처 식당에 들어갔다. 겉으로 보기에는 주방장, 직원, 손님들 모두 중국인처럼 보였다. 직원 중 한 명은 식당 안에서 이리저리 다니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모든 사람들이 중국어로 대화하고 있었다. 동기의 도움으로 우육면(소고기 면) 2개를 주문하고 음식을 기다렸다. 나는 몽골에서처럼 차를 시키고 싶었는데, 차를 주문하는 과정에서 소통이 조금 원활하지 못했다. 나는 습관적으로 몽골어를 했는데 우리 반대편에 앉은 한 노인이 내 몽골어를 알아 들었는지 내가 말한 것을 중국어로 직원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러고는 내게 차는 무료로 제공된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가 내몽골에서 내가 처음 본 몽골인이었다.
에렌 역은 한국의 시골의 작은 역처럼 조그만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항처럼 짐을 검사하고 몸을 수색했으며, 여권을 검사했다. 중국의 모든 역은 이러한 과정을 거친다고 했다. 검사를 마치고 대합실에서 핸드폰을 충전하며 기차를 기다렸다. 에렌 허트까지는 몽골 통신사가 터졌다.
저녁 7시 30분 후흐 허트에 도착했다. 후흐 허트(Хөх хот). 명칭 그대로 해석하면 푸른 도시라는 뜻이다. 후흐 허트는 1580년 투메드(Түмэд) 부의 알탄 칸(Алтан хаан)이 농경과 수공업을 발전시켜 건설한 도시로 1952년부터 내몽골 자치구의 수도가 되었다. 재미있게도 그 전까지 내몽골의 수도는 올랑 허트(Улаанхот)이었는데(1947-1950), 이는 빨간 도시라는 뜻이다. 인구는 2010년 기준으로 약 286만으로 80%에 가까운 비율의 시민이 한족이다. 때문에 기차에서나 역을 나와서도 몽골어는 전혀 들리지가 않았다.
마중을 나와 주신 선교사님 덕에 안전하게 숙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나와 동행한 동기는 그의 기숙사(내몽골사범대학교)로 돌아갔고, 이제부터는 선교사님과 일정을 함께 하게 되었다.
참조
1. Ган тулга, "Монголы
түүх"ын Солонгос хувилбар(몽골의 역사 한국어판), 동북아역사재단, 2005.
2. "Хөх хот",
"ӨМӨЗО", Википедиа нэвтэрхий толь(Монго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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