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27일 일요일
오후 5시 45분 나와 내 동기는 ‘올란바타르(Улаанбаатар)’ 역[사진1]에서 ‘자밍우드(Замын-үүд)’ 행 기차에 올랐다. 몽골 기차에 한국 동료와 함께 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타지에
있는 만큼 나는 되도록 나 자신이 외국인이라는 것을 티 내지 않으려 노력했는데, 특히 혼자 여행을 다닐
때에는 더더욱 그럴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몽골을 가로지르는 이 기차는 종단열차로 북쪽으로는 ‘울란우데(Улаан-үд)’, ‘이르쿠츠크(Иркутск)’, 러시아 및 동유럽까지 이어지며, 남쪽으로는 베이징까지 이어진다. 때문에 남행열차에 올라 몽골인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그들은 나를 중국의 내몽골 자치구에 살다 온 내몽골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내가 아는 내몽골인들은
몽골인민공화국 국민과는 조금 다른 내몽골 방언을 사용하는 화자와 중국에 살면서 몽골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게 되어버린 화자로 나누어진다. 작년 교환학생 기간 동안 몽골국립대학교 외국인 기숙사에서 종종 내몽골인들과 마주쳤는데 일부는 조금 낯선 억양을
가졌지만 자유자재로 몽골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반면, 일부는 정말 몽골어를 공부하는 외국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몇몇 몽골인들은 그런 내몽골인들을 무시하거나 싫어하는데, 여기에는
만주 청나라 시대 2세기 동안 몽골인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던 역사적 악감정이 더 해진다.
내가 내몽골을 가게
된 경위는 이렇다. 작년 교환학생으로 몽골에 있을 때 우리 아버지는
88올림픽 탁구 복식에서 현정화 선수와 함께 팀을 이루어 금메달을 받은 양영자 선수의 강연을 듣게 되었다. 강연이 끝나고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우연히 양영자 선수의 남편이 몽골에서 선교사로 활동했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아버지도 아들인 내가 몽골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나도 그녀의 남편인
이영철 선교사님과의 인연이 닫게 된 것이다. 이번에 내가 몽골 전 대통령 엘벡도르지 명의의 연구소인 EBI 에서 주최하는 “해외 젊은 몽골학자 장학 프로그램”을 통해 8월 7일부터 16일까지 몽골에 있게 되었고, 참가자가 희망한다면 원하는 기간까지
몽골에 더 체류하는 것이 가능했다. 마침 선교사님도 8월
중순에 번역 컨설팅 때문에 중국에 올 일이 생겼고, 선교사님의 일이 마무리되는 8월 말쯤 내몽골 자치구의 수도인 ‘후흐허트(Хөх хот)”에서 만나 내몽골의 몇몇 도시와 ‘흑룡강성(Хармөрөн муж)’의 ‘하얼빈(Харбин)’, ‘랴오닝성(Ляонин муж)’의 ‘선양(Шэньян)’으로 답사 및 여행을 계획하게 된 것이다.
내몽골로 떠나기 전까지 나는 몽골에서 여행을 좀 다니기로 했다. 8월 16일 프로그램이 모두 끝나고 17일 나는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한 뒤, 미리 예매한 ‘동고비(Дорнодговь)’의 ‘생샨드(Сайншанд)’행 버스표를 가지고 ‘뱌양주르흐 터미널(Баянзүрх)’로 떠났다. 울란바타르에는 2개의 버스터미널이 있는데 하나는 몽골의 중부, 남서부, 서부 지역으로 가는 ‘드라곤(Драгон)’ 터미널과 이 바양주르흐 터미널인데, 나는 보통 북서부 지역으로 여행을 다녔기 때문에 바양주르흐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실 드라곤 터미널에서 표를 예매할 때 까지도 나는 바양주르흐 터미널이 존재한다는 것 조차 알지 못했다.
생샨드는 동고비의 중심지로 25,210명 인구의 작은 도시다. 중국 국경으로 가는 관문 중 하나로 국경도시 자밍우드에서 200km 못 미치는 곳에 위치한다. 또한 생샨드에는 ‘고비의 성인’이라 불리우는 ‘단잔라웁자(Говийн ноён хутагт Данзанравжаа)’를 기념하는 박물관과 ‘사랑 후후(Саран хөхөө)’ 극장이 있으며, 생샨드에서 40km 떨어진 곳에는 몽골 전국 각지에서 찾아와 기(енерги)를 받아가는 ‘하마르 사원(Хамрын хийд)’이 있는데 이 사원 역시 단잔라웁자가 세운 사원이다.
그는 몽골 7대 성인 중 한 명이자 철학자, 시인, 화가, 작곡가, 예술가, 종교인, 몽골 최초 극단 창립자, 극작가이자 연출가로 몽골 예술사에 있어서는 빼놓을 수 없는 ‘기인’이다. 그는 1803년 겨울, 동고비의 흡스골(Хөвсгөл) 솜에서 지금의 내몽골 지역인 ‘실링걸(Шилийнгол) 아이막’ 출신의 돌도이트(Дулдуйт)라는 사람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릴 적 아버지와 구걸을 하며 살아갔다. 일곱 살 때에 승려가 되고 어느 귀족의 연희에서 ‘상제(Хурмаст тэнгэр)’라는 시를 읊으며 군중들을 놀라게 했다. 그에 대한 소문이 당시 몽골을 지배하던 만주 청나라의 황제의 귀까지 들어가게 되자 황제는 라마 불교의 수장 3명과 군대를 보내 그의 불도와 재능이 거짓이라면 사형에 처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3명이 모두 그를 인정하고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는 계속해서 종교를 연구하다가 16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몽골의 계몽에 뜻을 품게 되었고, 900개 이상의 시와 200개 이상의 몽골어 서적, 180개 가량의 티베트어 서적을 남겼으며 17살 때에는 그가 직접 설계하여 수많은 사원들을 세웠는데, 그 중 특히 하마르 사원은 그 내부가 그의 작품들과 책들로 가장 잘 구성되어 있는 사원이다.
그는 27살 때에(1830년) 몽골 최초의 극단인 사랑후후 유랑극단을 창립해 여러 작품들은 상연하며 전국을 순회하였고, 그 중 ‘만도하애 여왕(Мандухай хатан)’은 후일에 스크린 영화로도 만들어져(1988년) 몽골인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 다만 지금 생샨드에 있는 사랑후후 극장은 그를 기념하여 만든 영화관이며, 사랑후후 유랑극단이 지금까지 존재하지는 않는다.
그에 관한 재미있는 설화가 하나 있는데, 이는 결국 그의 죽음까지 이어지게 된다. 흔히들 그를 ‘술에 취한 성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술을 약수처럼 마시며, 술을 마실수록 지혜로워지고 좋은 학술 서적을 써내고 요술을 행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는 제자들을 불러 모았는데, 항아리에 물을 부어 놓고는 책을 읊자 항아리 안에 있던 물이 끓어 넘쳐 술 향이 집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이 정도 경지에 오른다면 술을 마셔도 좋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술에 손도 대지 말아라”하고 가르쳤다고 한다. 그러다가 1865년 만주 청나라의 10번째 황제 청문종(Бүрэн засагч)은 단잔라웁자가 술을 좋아한다는 것을 이용해 고비지역의 한 귀족부인으로 하여금 술에 독을 타게 하여 그를 독살하도록 지시했다. 단잔라웁자는 황제가 자신을 독살시키려고 하는 것을 눈치챘으나 ‘괜히 죄 없는 남들이 고통 받지 않도록 하자. 죽을 때가 온 것 같구나’하며 다가오는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그는 귀족부인을 위해 “세상 모든 부인들의 지침”이라는 시를 짓고는 생을 마감했다.
내가 생샨드로 가게 된 이유는 그 막연한 단잔라웁자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었다. 또, 8월 21일 시작될 흡스골 여행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지 않은 채 동고비로 떠나게 된 것이다. 생샨드 여행은 사전에 예약해 둔 숙소나 운전사 혹은 가이드, 차편도 구해두지 않은 채 떠났기 때문에 조금은 위험한 여정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버스 옆 좌석에 앉은 생샨드 주민이 생샨드에 도착해서 아는 사람을 통해 운전사 겸 가이드를 한 명 구해주셨는데, 그 가이드는 마침 그날 밤 몽골 여행객 2명을 기차역에서 태우고 하마르 사원으로 떠나려던 참이었다고 한다. 내가 그곳에 도착한 시간이 밤 9시 즈음 되었는데 조금만 늦었다면 그들과 합류하지 못할 뻔했다. 가이드는 1박 2일의 일정 동안 함께하며 한 사람당 30,000투그릭(약 15,000원)을 받는다고 했다. 나는 그의 명함을 소중히 간직하기로 했다.
몽골 여행객 2명은 한 쌍의 모자(母子)이었는데 어머니는 한국에서 2년 동안 일을 하다가 이제 막 몽골에 들어와 아들을 데리고 처음 동고비로 여행을 하러 오는 길이라고 말했다. 8월 6일 날 몽골에 입국했다고 했는데, 내가 몽골에 온 날짜와 같았다. 비록 항공사는 달랐지만(나는 몽골의 MIAT, 그 분은 대한항공) 같은 날 같은 한국에서 몽골로 들어와 동고비에서 만나 여행을 함께 하게 된 것이 참 재미있는 인연이었다..
하마르 사원 인근의 게르 캠프에 도착하고 나와 모자는 한 게르에 짐을 풀었다. 성수기가 지나 한 사람당 하루에 15,000투그릭(약 7,500원)을 받는다고 했다. 나는 오늘 호텔에서 체크아웃 한 이후로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아 몹시 배가 고팠다. 음식을 주문하고는 모자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함께 별을 보러 나갔다. 몽골 초원에서 밤하늘을 수없이 봐왔기 때문에 고비의 별이라고 얼마나 특별할까 했던 내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일출의 감동을 머금은 채 하마르 사원 유원지(Хамарын хийдийн цогцолбор)로 이동했다. 108개의 불탑(Суварга)으로 둘러싸인 이 유원지의 입구를 ‘샴발라의 문(Шамбалын хаалга)’이라 부르는데, 샴발라는 티베트 불교 전설에 등장하는 왕국의 이름이다. 또 그 벽에는 큰 눈썹과 눈이 그려져 있는데, 몽골인들 사이에서 이 눈은 ‘천지가 개벽하기 전, 문명을 갈구하던 3번째 세계에 지혜를 가져다 준 사람의 눈(Бодвений мэлмий)’이라 하여 이 눈을 응시하면 치유를 받거나 마음이 열리고 영감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이 눈과 눈썹 사이를 바라볼 때에 눈 아래의 고리 형상이 빙글빙글 돌거나 눈이 깜빡이거나 혹은 눈썹 사이의 노란 원과 아래의 고리가 여러 가지 빛으로 반짝인다면 그 사람을 기가 많은 사람이라 말하고, 전혀 그러한 형상이 보이지 않는다면 여기서 기를 많이 받아가야 한다고 가이드는 소개한다. 유원지 안에서 사람들은 기를 받기 위해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서 관습을 행한다. 특히 사람 40명 정도 누울 수 있을 법한, 빨간 자갈이 깔린 둥그런 원에 누워 일광욕을 하는 모습이 흥미롭다. 불심이 충만한 동행이 천천히 유원지를 도는 동안 나는 그 원에 누워 잠시 눈을 붙였다. [사진4, 5, 6]
다음으로 간 곳은 ‘벚꽃이 피는 평원(Сакура цэцэжлэдэг хөндий)’이다. 단잔라웁자는 학문뿐만 아니라 무예에도 뛰어났다고 하는데, 한 일본의 사무라이가 그의 무술에 감탄하여 3년 동안 그에게서 무예를 배우고 떠날 때 이곳에 벚꽃을 심어주고 사무라이 검을 선물로 주고는 떠났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실제로 그 사무라이 검은 생샨드 시내에 단잔라웁자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 석조 건물 안에는 기도하는 동굴들과 구멍이 존재하는데, 그 구멍 사이로 통과하면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오듯 새로 태어나는 것처럼 죄가 정화된다고 이야기한다. 벚꽃이 피는 봄에 이곳은 관광객들로 붐벼 몇 시간 동안 줄을 선다고 한다. 내가 갔을 때에는 너무나도 황량하고 한적해서 그 모습이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사진7]
공룡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고비 사막에서 굉장히 많은 공룡 화석이 발견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마르 사원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이드는 그 주위의 공룡 화석[사진8]과 중생대 바다 지형[사진9], 나무 화석[사진10]이 있는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다니며 구경시켜 주었다. 동고비 지역에 대해 잘 모르는 관광객들은 가이드가 일부러 챙겨서 데려다 주지 않으면 그냥 모른 채 지나쳐 버린다고 한다. 관광지에서 불과 5분, 10분 떨어져 있는 곳에 있기 때문에 항상 여행을 다닐 때는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미리 잘 조사하고 가야 더 알찬 여행이 된다는 걸 새삼 느꼈다. 나는 사실 하마르 사원 주위에 화석이나 중생대 지형이 있는지 몰랐지만, 운이 좋게도 좋은 가이드를 만나 기대하지도 않은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었다.
따뜻하게 데운 허르먹이 나왔다. 몽골인들이 이 허르먹이 사람의 오장육부에 고루 좋다고 하여 고비에 오면 꼭 마셔야 하는 건강 음료라고 이야기한다. 다만 마유주(Гүүний айраг)와 마찬가지로 너무 많이 마시면 오히려 장에 좋지 않기 때문에 적당히 마시는 것이 좋다고 한다. 나도 고비에 와서 직접 마셔보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도시에 유통되는 허르먹과는 확실히 그 맛이 달랐다. 마유주 역시 시골의 것과 도시에서 유통되는 것의 차이가 너무나도 큰데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참 유감인 사실이다. 한참 있다가 깨어난 이레두이의 어머니도 맛을 보자마자 허르먹을 구입하고 싶다고 하셨다. 캠프에서는 낙타를 기르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구입할 수가 없었고, 다음 일정지인 ‘소원산(후슬린 올-Хүслийн уул)’으로 가는 길에 모래 언덕을 지나(동고비의 사막은 자갈사막, 암석사막에 가까워 모래가 많지 않다) [사진14] 낙타를 기르는 유목민의 가정에서 허르먹 세 병을 구입하셨다. [사진15]
일정이 모두 끝나고 우리는 생샨드 역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가이드와 헤어진 후, 우리는 밤 기차가 떠나기 전까지 시내에서 시간을 보냈다. 모자와 단잔라웁자 박물관을 방문하여 그가 남긴 저술들과 작품들을 보았다. 일본에 관심이 많은 이레두이는 역시나 단잔라웁자가 사무라이에게 선물 받았던 검에 큰 관심을 보였다. 나는 단잔라웁자가 세운 사랑후후 극단에 관한 서적을 하나 구입했다. 애초에 나의 그에 대한 관심분야는 연극이었기 때문이다. [사진18, 19 20]
우리는 박물관에서 나와 저녁을 먹은 뒤 시내를 돌다가 역으로 돌아가 기차에 올랐다. 그리고 그로부터 아흐레가 지난 오늘 나는 다시 생샨드를 지나 자밍우드로 가는 기차에 오른 것이다.
참조
1. Хондогынхон
Базаррагчаагийн Баярсайхан, “Монгол хэлний талбар толь”, УБ, 2011
2. Самбуугийн Хөвсгөл,
“Д.Равжаагийн ‘Саран хөхөөний намтар’ жүжгийн зохиолын шинжлэл, эх зохиол”, УБ,
2016.
3. Википедиа нэвтэрхий толь(Монгол).



















0 댓글